“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중요하듯이, 현재를 의미 있게 살아가려면 과거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역사는 기록할 만한 사건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니, 두고두고 만나 대화를 나누어도 손색이 없다. 최근에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도 바로 이런 점에 주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역사를 만나야 할까? 역사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해서 갑자기 《조선왕조실록》을 파고들 수도 없고, 두꺼운 학술서나 논문을 탐독하는 것은 더더구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먼저 만나본 안내인과 동행하며, 때로는 물어보고 때로는 대화하며 역사의 핵심으로 접근하는 게 나름대로 효과적인 방법이다. 책문에서 출판한 《흔적의 역사》는 딱딱하고 건조하게만 보이는 역사의 주요 장면을 마치 대화하듯이 독자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이기환 저자는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기도 한’ 40건의 역사적 사건들을 추적하며 조선시대를 누빈다. 그는 언론사 기자답게 자료를 직접 찾고 현장을 발로 누비며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의 맨얼굴”을 발랄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날짜까지 세세하게 언급하며 사건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조선시대를 화려하게 채색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무대로 이끌어냄으로써, 독자들이 조선과 우리 시대의 공통 과제들을 치열하게 탐색하도록 돕는다.
저자가 풀어낸 4부 40꼭지에는 조선판 세월호 사건부터, 침실에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한 정조, 사초폐기 사건, 조선의 인사검증 시스템, 군대 면제 문제 등등 우리 시대와 연관된 무궁무진한 역사의 팩트로 가득하다. 또 임금이면서도 임금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정종, 만고의 성군이라면서 능지처참이라는 혹독한 형벌을 남발했던 세종, 연산군보다 더 악질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려 했던 태조와 영조, 인현왕후와 장희빈 등 두 여인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못된 남자 숙종, 지독한 골초로 조선을 흡연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정조까지 모두가 기존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너무도 달라 놀랍기만 하다.
천하의 폭군이라는 연산군마저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라고 했다. 새삼 기록의 위대함을 느낀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계층,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사건들을 만나면서, 저자는 우리를 옛 사람들의 이야기에, 발자취에, 흔적에 흠뻑 빠지도록 이끈다.
◉ 책 들여다보기
1403년(태종 3년) 5월 5일, 큰 재난이 일어났다. 경상도의 조운선(각 지방에서 거둔 세금 현물을 운반하는 배) 34척이 침몰한 것이다. 참변을 보고받은 임금은 죽은 이가 몇 명이고, 잃은 쌀은 또 얼마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정확한 피해상황도 파악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신하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대강이라도 말해보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따라왔다.
“예. 쌀은 1만여 석 되는 것 같고, 사람은 1,000여 명쯤 됩니다.”
태종은 “이 모든 책임은 과인에게 있다.”라고 장탄식했다.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었구나. 출항일(5월 5일)은 수사일(受死日·대흉일)이고, 풍랑
마저 거센 날이어서 배를 띄울 수 없었는데 (중략) 바람이 심한 것을 알면서 배를 출발시켰으니 이것은 백성을 몰아서 사지로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이 죽은 것이 너무도 불쌍하다.”라고 애통해 했다.
- 제1부 1장 “조선판 세월호와 태종의 사과” 중(16~17쪽)에서
1783년(정조 7년), 재해가 나자 정조는 자신의 침실에 ‘상황판’을 걸어놓았다.
“침실의 동·서벽에 재해를 입은 여러 도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그곳에 고을 및 수령 이름과 세금경감과 구휼 조목 등을 죽 써놓고, 한 가지 일을 처리할 때마다 기록했다.” -《홍재전서》 166권, 〈일득록 6·정사 1〉
한마디로 재해대책본부를 침실에 차린 것이다. 그러면서 정조는 “이 모든 것이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백성이 배고프면 내가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 재해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백성을 돌보는 것은 특히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백성의 목숨이 달려있는 사안이므로 중단할 수 없지 않은가.”
- 제1부 3장 “만기친람 정조, 침실에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다” 중(39~40쪽)에서
정도전은 조선 개국 뒤 술자리 때마다 취중진담의 형식을 빌어 “한 고조 유방과 장자방 장량”의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도전이 언급한 장자방, 즉 장량이 누구인가. 장량은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개창한 한 고조 유방의 둘도 없는 책사였다.
(중략)
그런데 정도전은 술자리에서 큰 일 날 소리를 해대고 있다. 그것은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기용한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유방을 이용해서 제국(한나라)을 개창했다.”라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두 말 할 것 없이 한 고조는 태조 이성계, 장자방은 정도전 자신이다. 그러니까 정도전은 자신이 꿈꾸는 새 왕조를 개창하려고 이성계를 기용했다는 이야기를 술자리 때마다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춘추대의’에 반하는, 즉 역심을 한껏 드러낸 대역죄가 아닐 수 없다.
- 제2부 11장“‘바보 임금도 좋다’, 재상의 나라 꿈꾼 정도전” 중(138~139쪽)에서
“요사이 괴이한 일이 있다. 말하기도 수치스럽지만 (중략) 글쎄 세자빈(봉씨)이 궁궐의 여종(소쌍)과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구나.”
1436년(세종 18년) 10월 26일, 세종이 사정전에서 주변을 물린 뒤 도승지 신인손과 동부승지 권채를 은밀히 불러 하소연한다. 세종이 이토록 비밀리에 신료들을 만난 것은 며느리의 동성애 스캔들 때문이었다.
- 제3부 22장 “세종대왕 며느리의 금지된 사랑” 중(284쪽)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담배)만한 것이 없다. (중략) 이 풀이 아니면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꽉 막힌 심정을 뚫어주지 못한다. (중략) 담배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 하고자 한다.”
정조는 ‘담배 예찬론’을 설파하는 것도 모자라 온 백성들을 흡연가로 만들겠다고 했다. 사석에서 한 말이 아니다.
(중략)
정조는 “이 풀(담배)에 필적할 은덕과 이 풀에 견줄 공훈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담배가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천지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러면서 “온 백성이 담배를 피도록 해서 그 효과를 확산시켜 담배를 베풀어준 천지의 마음에 보답하자.”라고 역설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임금이 앞장서서 범국민적인 흡연운동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 제4부 38장 “‘조선을 흡연의 나라로!’, 정조의 공언” 중(500~502쪽)에서
◉ 저자 : 이기환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나 중동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1986년에 《경향신문》 수습 26기로 입사했다. 각양각색의 부서를 거친 뒤 기자생활 15년을 넘기면서부터 문화부에서 문화유산을 담당했다. 회사의 음덕으로 비무장지대 일원을 1년간 답사하는 기회를 얻었고, 중국과 러시아의 평원을 장기간 탐사하는 귀한 경험을 쌓았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비무장지대 문화유산’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지금 사회에디터의 직책을 맡고 있는 와중에도 역사칼럼을 열심히 쓰고 있다.
필자의 관심은 한 가지다. 중고교시절 암기과목에 불과했던 역사와 고고학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알려주고 싶은 열망뿐이다. 지금도 열심히 관련문헌과 논문 및 서적을 들춰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저작물로는 《분단의 섬 민통선》, 《성산 장기려》, 《아버지의 얼굴》, 《우리 큰형 이야기》, 《끝없는 도전》 등이 있고, 공저로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한국사 기행》, 《한국사미스터리》가 있다. 2013년에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경기도가 펴낸 국·영문판 DMZ 안내서인 《DMZ가 내게 말을 걸다(Whispers of the DMZ)》에 필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