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영화 <아바타> 속 판도라 행성의 아름다운 생물체를 본 관람객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신비로운 생태계에 공생하는 수많은 식물과 곤충, 새와 포유류……, 그것들은 태초에 지구에 존재했으나 이제는 사라진 생명체들의 모습이 아마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자연 다큐멘터리 신드롬을 몰고 온 <아마존의 눈물>은 인류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중요시되며, 환경과 생태에 대한 담론이 유행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멸종되어가는 수많은 동식물의 모습은 어쩌면 그것이 미래 인간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각성을 가져왔다. 2075년에 지구상의 모든 숲이 사라질 것이며, 100년 뒤에는 해류의 흐름에 변화가 일어나 기후가 바뀌면서 쌀농사를 지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늘 먹는 생선도 잡히지 않게 될 거라는 캄캄한 미래 예측이 이제 전혀 새롭지 않을 정도다.
21세기 ‘환경’과 ‘그린’ 코드의 물결 속에 선보이는 이 책은 일본과 한국에 ‘이상한 생물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생물 이야기》의 두 번째 버전이다. 좀 더 큰 판형과 시원스럽게 앉혀진 일러스트로 상상을 초월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판타지 같은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100년 뒤에는 이미 사라져 지구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멸종 위기의 동물 64종이 예술적인 일러스트 컷, 유머 넘치는 해설로 새롭게 살아난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지은이의 해설을 따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이런 생물도 있다니!” 하며 놀라움과 흥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책 속 부록으로 제공되는 화려한 색감의 컬러 포스터는 독자들에게 아마존 탐험이 부럽지 않은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사막뿔도마뱀
미국 사막에 사는 순해빠진 이 도마뱀은 손바닥만한 크기에 동작도 느리다. 전혀 모질거나 사납지가 않다. 하지만 이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생물도 강력한 비밀 무기를 갖고 있다. 적에게 쫓기면 냅다 눈에서 피를 발사해 적을 위협하는 것이다. 빈혈도 불사하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이 반격에 굶주린 코요테마저도 꼬리를 감추고 물러서게 된다.
대눈파리
만화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처럼 생긴 대눈파리는 수컷끼리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눈과 눈 사이의 간격을 열심히 잰다. 그 간격은 수컷의 유전자가 얼마나 우수한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두 눈 사이가 벌어져 있을수록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넙적한 얼굴일수록 브래드 피트, 이병헌인 셈. 그리고 측량을 통해 승패가 결정되면 패자는 군말 없이 물러선다.
관해파리류
지구상에서 가장 긴 생물은 무엇일까? 고래? 뱀? 아니다. 해파리다. 관해파리류는 각각의 개체가 하나로 융합된다. 그리고 분열과 융합을 반복하면서 기차놀이 하듯이 계속 이어져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길이 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해파리로 성장한다. 게다가 각각의 해파리들은 유영, 소화, 부력 조정, 생식 등 기능별로 변신하여 각각의 기관으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결국 집단이면서 한 마리의 생물로 행동하는 군체(群體) 생물로 변하는 것이다.
꽃전차갯민숭이
워낙 기묘한 모양을 지닌 갯민숭달팽이 가운데서도 과일에 별사탕을 뿌린 것 같은 모양을 한 이 꽃전차갯민숭이는 그야말로 희귀한 종류다. 어지간해서는 구경하기도 어렵다. 자극을 받으면 표면이 푸르스름한 빛을 낸다. 그런 모습 때문에 ‘바다의 UFO’라고도 불린다. 왜 빛을 내는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생태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야말로 미지의 생물인데, 일단 화려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꽃전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레우코클로리디움
달팽이의 몸 안에 침투한 이 기생충은 장 안에서 무성생식을 하여 담배 모양으로 뭉친다. 그러고는 달팽이의 머리 부분으로 파고 들어가 그 눈을 번데기처럼 크게 만든다. 해가 뜨면 눈에 띄는 장소로 달팽이를 유도하여, 마치 전자오락실 가게의 네온사인처럼 요란하게 눈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야 새의 눈길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의 눈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번데기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새들에게 먹이가 여기 있다는 광고를 해대는 것이다.
초승달뿔매미
초승달뿔매미는 나무의 싹을 덮어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아린’(芽鱗)의 모양과 비슷하다. 분명히 이제 막 벗겨지려는 아린과 똑같이 생겼다. 수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자연이 빚어낸 놀라운 모습이다. 몸 뒤로 목이 괴물처럼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면 너무 부담이 커서 오히려 살아남기에 더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은 모습이지만, 초승달뿔매미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이 하늘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 저자 소개 하야가와 이쿠오 지은이
1965년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인 다마미술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광고회사와 출판사를 거쳐,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는 ‘디자인 라이터’로 새 출발을 했다. 첫 작품인 《이상한 생물 이야기》 시리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에게는 ‘생물 연구계의 이단아’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그들을 별세계의 생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도 엄연한 지구 생태계의 일원입니다. 그들의 수가 줄어들면 반드시 인간에게도 보복이 올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보고 이상한 생물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데라니시 아키라 그린이
광고에서 편집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동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마치 사무라이가 석탑을 둘로 쪼개는 듯한 예리한 화풍으로 유명하다.
권일영 옮긴이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중앙일보사에서 《소년중앙》《여성중앙》 등의 월간지와 멀티미디어 관련 기자로 일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스트로보》《용은 잠들다》《레몬》《게임의 이름은 유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