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한국사 기행
역사적 지식을 기행을 통해 누구나 즐겁고 흥미 있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
ISBN 978-89-315-7482-1
저자 조유전, 이기환
발행일
분량 528쪽
가격 24,000원
색도 4도
판형 4×6배판 변형(170×223mm)
분야 역사와 문화
정가 24,000원↓
판매가 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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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 1,200원(5%)
  소득공제
도서소개

이 책에 대하여

 

고고학자 조유전과 이기환의 한국사 기행

 

『한국사 미스터리』로 국내 인문학계에 고고학 바람을 일으킨 조유전, 이기환 저자가 또다시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지식기행 다섯 번째 책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대표 유적지의 발굴사와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문헌 지식(역사)과 발굴 지식(고고학)의 행복한 만남을 이뤄냈다. 이 책과 동행하다 보면 역사의 비어 있는 부분을 고고학이 안겨주는 역사적 상상력으로 메울 수 있으며, 우리 역사에 대한 통합적인 지식과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

 

 

발굴로 보는 우리 역사 답사기

 

국사 과목을 떠올리면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외우느라 밤을 새웠던 기억부터 떠오른다.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지나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국사. 수능 선택과목이 되면서 학교에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교양’ 하면 당연한 듯 ‘역사’ 분야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우리 국사가 수천 년 동안 쌓아 온 ‘역사적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책문에서 출간한 『한국사 기행』은 역사적 지식에 기행이라는 테마와 엮어 우리 역사를 누구나 즐겁고 흥미 있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전체 5부 30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문헌이 남아 있는 역사시대는 물론이고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이 담긴 선사시대의 흔적까지 ‘발굴과 기행’을 통해 추적했다. 충청도 장선리에서 출발해 전라남북도와 제주도를 거쳐 경상남북도와 강원도를 거쳐 경기도 연천에서 끝나는 이 장거리 여행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역별로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발굴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을 따라 답사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전역의 역사를 ‘발굴’이라는 매체를 통해 둘러볼 수 있는데, 발굴 당시의 현장으로 종횡무진 이동하면서 담당자와 인터뷰도 하고 발굴비화도 들을 수 있다. 이런 고고학 발굴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문헌을 통해 드러난 역사적 실체의 틈을 메우고, 후대 사람들이 선대와 보다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은 ‘발로 뛰는 역사 체험기’이자 ‘역사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만지며 경험하는’ 대안 역사책이다.

이 30편의 지식기행에 동행하는 저자들은 ‘우리나라 고고학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오랫동안 문화재 전문 기자로 일해 온 《경향신문》의 이기환 부국장이다. 저자들은 이미 발굴했거나 지금도 조사하고 있는 주요 유적지를 해당 발굴 담당자들과 함께 답사하면서, 현장의 목소리와 발굴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해당 발굴과 관련된 역사적 지식과 상상력까지 덧붙임으로써, 발굴을 통해 우리 역사를 보다 쉽고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한의 비밀을 간직한 공주 장선리 유적(1장)’이나 ‘서동과 선화의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8장)’ 등은 발굴이 기존 학설에 엄청난 쟁점을 가져다 준 것으로 손꼽히고, ‘발 끝에 걸려 머리를 내민 단양 적성비(5장)’나 ‘어느 향토사학회가 발견한, 중원 고구려비(6장)’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들을 흥미롭게 확장하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또 ‘구국의 일념이 절절이 배인 경주 사천왕사터(18장)’에서는 삼국통일 이후 당나라와 격전을 벌여야 했던 신라의 절박함이, ‘세계를 눈물로 적신 사랑이야기, 안동 원이 엄마의 편지(21장)’에서는 먼저 떠난 남편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신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성백제인들의 논어책이 나온 인천 계양산성(27장)’을 방문해 삼국시대 초기의 『논어』 공부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출산 직전에 사망한 산모, 파주 파평 윤씨 미라(29장)’를 보며 자궁파열로 출산 직전에 목숨을 잃은 모자의 사연에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문헌 지식’과 ‘발굴 지식’의 행복한 동행

 

발굴을 통해 역사를 조명하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책은 발굴 상황과 문화재 보존의 어려움까지 고스란히 담아냈다. 막 노출되기 시작한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사업시행자에 의해 포클레인으로 밀린 이야기(서문)부터, 인골이 확인된 고인돌의 덮개돌이 조형물로 사용된(24장) 가슴 아픈 사례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발굴된 한 신축공사장에서는 건축주와 문화재 담당자들이 협조해서 ‘지하박물관’을 건설하는 것으로 매듭지어 짐으로써, ‘대규모 개발과 문화재 조사’가 윈윈할 수 있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발굴과 관련된 행복하고 즐거운 유적 발굴 소식과 더불어 훼손 상황까지 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유적과 유물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실체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록유산과 실체적 유산을 함께 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세상에 나왔다. 발굴을 통해 사라진 과거에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예전부터 줄기차게 외쳐 왔던 우리나라 ‘반만 년의 역사’는 ‘최소 30만 년 전 아득한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고고학이란 학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 역사가 반만 년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 이 책은 발굴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자 매우 조심스런 시도다. 하지만 지금까지 역사가 고리타분하고 어렵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왔던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런 고민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그 속에는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해 버린 동래 복천동 고분군(14장)’처럼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내용도 있고, ‘고철에서 국보로 운명이 뒤바뀐 화순 대곡리 청동예기(10장)’에서 짜릿한 희열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행의 종착지는 역시 ‘기록’과 ‘유적’이 만나 역사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저자들은 이 행복한 순간에 이르기 위해 ‘문헌 지식’과 ‘발굴 지식’을 한껏 버무려 잘 차린 밥상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기 위해 애썼다. 빙산의 일각으로 전체를 얘기하려는 오만함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사라진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 책을 봐주길 바란다. 지나친 자신감이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문화유산이 ‘뽑아버려야 할 전봇대’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적 실체를 보여 줌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전국의 발굴현장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아내는 고고학도들과, 현장에서 나온 새로운 자료를 놓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공부하여, 미래에 대비하려는 역사학도들처럼,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역사학’과 ‘고고학’의 행복한 동행에 함께 했으면 한다. 그것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우리 역사의 수많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작지만 가장 위력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 들여다보기

 

11월 3일. 연구실에서 서류정리를 하고 있던 이훈 실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2지역, 즉 수촌리 현장에서 발굴을 담당하던 이창호 연구원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 실장님, 지금 1호 토광묘에서 이상한 것이 잡혔어요. 금동관하고 환두대도(둥근 고리 칼)가 나왔어요.”
“금동관?”
머리가 띵했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며칠 전에 본 청동기 세트도 처음인데, 이번에는 금동관이라니. 급거 현장으로 달려간 이훈 실장의 앞에 희미한 금동관 같은 범상치 않은 흔적과 환두대도가 보였다.
(중략)
이훈 실장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낮에 보았던 1호분의 장면이 파노마라처럼 스쳤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머리에 쓰는 금동관이 환두대도의 칼끝에 있을까? 칼이 거꾸로 놓였단 말인가? 순간 이훈 실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 왜 금동관이라고만 생각했을까? 금동신발……. 맞다! 금동신발이다!’ 백제 금동신발은 무령왕릉, 즉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최상격의 유물이 아닌가?
- 1부 2장 ‘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 공주 수촌리 고분’ 중에서

 

크레인으로 들어올린 2단 심주석과 1단 심주석 사이의 틈은 석회로 밀봉된 흔적이 있었으므로 조성된 그대로, 즉 백제인들이 만든 그대로 노출된 것이었다. 조사단원들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조심스레 사리공(25×25센티미터, 깊이 27센티미터) 뚜껑을 열어 보았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현장에는 정적이 흘렀습니다. 뚜껑을 열자 사리공 중앙에 금동제사리외호가 안치되어 있었고, 남측 벽면에 먼지를 머금은 금판이 보였습니다.”(배병선 실장)
금판을 꺼내 먼지를 닦자 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글자가 보였다.
“‘法王’, ‘百濟王后’같은 명문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김봉건 소장)
(중략)
명문에는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왕후(百濟王后)가『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의 따님인 선화공주가 아니라 “우리 백제왕후(我百濟王后), 즉 좌평(백제 16관등 가운데 최고벼슬) 벼슬인 사택적덕의 따님(佐平沙宅積德女)”이라고 못 박고 있지 않은가.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어요. 명문대로라면『삼국유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되면 선화공주가 미륵사를 지었다는 것과, 서동요를 포함해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모두 허구가 되어버릴 판이었죠.”(조유전 선생)
조유전 선생의 말마따나 충격적인 내용이 전해지면서 각 언론뿐만 아니라 학계가 요동쳤고, 선화공주와 서동이야기를 신주 모시듯 했던 익산 지역은 일순 ‘패닉’상태에 빠졌다.
- 2부 8장 ‘서동과 선화의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 석탑’ 중에서

 

“‘원이 엄마의 애끓는 사랑편지’야말로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 할 수 있어요.”(조유전 선생)
사람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린 또 하나의 유물은 이응태의 부인, 즉 원이 엄마가 남편을 위해 만든 미투리(삼이나 모시 등으로 삼은 신)였다. 미투리는 미라의 오른쪽 부분에서 발견됐다.
“기막힌 것은 원이 엄마가 이 미투리를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麻)을 섞어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미투리(가로 27센티미터×세로 26센티미터)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요.”
연구팀을 더‘짠’하게 만든 것은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편지 내용이었다.
“워낙 훼손이 심해 몇 군데만 읽을 수 있었는데 내용은‘이 신 시너못……’이라는 내용이었어요. 즉‘당신을 위해 내 머리카락으로 정성스레 삼은 신이었는데 이 신을 신지 못하게 됐다.’는 소리니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 3부 21장 ‘세계를 눈물로 적신 사랑이야기, 안동 원이 엄마의 편지’ 중에서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신라 유적이 켜켜이 나왔어요. 특히 청동기 주거지가 무려 28동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단순히 많이 나온 게 중요하다기보다는…….”(윤석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 조사1부장)
그랬다. 아우라지 유적에서 확인된 두 가지는 한국선사고고학을 뒤흔들 핵폭탄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먼저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나온 이른바 덧띠새김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刻目突帶文土器) : 눈금 같은 무늬를 새긴 덧띠를 두른 토기]의 출현이다. 이것은 2007학년도 고교 국사교과서에 수정된 청동기 기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신석기시대 말인 기원전 2000년쯤에 중국 랴오닝[遼寧], 러시아 아무르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토기가 앞선 빗살무늬토기문화와 약 500년간 공존하다가 점차 청동기시대로 넘어간다. 이때가 기원전 2000년께에서 1500년께로 한반도 청동기시대가 본격화된다.”
이 대목은“신석기시대에 이어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쯤에, 만주 지역에서는 이보다 앞선 기원전 15∼13세기쯤에 청동기시대가 전개되었다.”는 기존 내용과 비교할 때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다.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기원을 500∼1,000년 올려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 4부 24장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진 정선 아우라지 청동기 마을’ 중에서

 

“얼마나 떨렸던지……. 드디어 천판을 열었어요. 그런데…….”
외관의 천판을 들어 올리자 내관의 천판이 드러났다. 그런데 내관 천판 위에서 글자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 자씩 읽어 내려갔어요. ‘坡平尹氏之柩(파평윤씨지구)’, 즉 파평 윤씨의 무덤이라고 적힌 명정(銘旌: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깃발)이 내관 천판을 덮고 있었어요.”
(중략)
다시 조심스럽게 내관의 뚜껑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욱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판을 제거한 내관의 내부가 전체적으로 한지를 덮어 가장자리를 정리한 상태였어요. 중간 오른쪽에 한지가 약간 찢겨져 홑치마가 살짝 보였는데…….”
이 정도라면 관 내부는 훼손된 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웅변해 주고 있었다. 한지를 걷어내자 과연 홑치마와 누비단저고리, 겹저고리, 솜장옷 등이 차례차례 노출되기 시작했다. 발굴단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시신을 꽁꽁 감싼, 전혀 썩지 않은 완벽한 형태와 화려한 색상의 염습의(殮襲衣: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입히고 묶는 옷)가 있다는 것은……. 결국 시신이 썩지 않고 미라상태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의미였죠.”
(중략)
사진을 판독한 김 교수 팀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처음에 부풀어 오른 배 부분을 보았더니 복강과 골반강 안에서 태아의 골격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암 덩어리가 아니라 태아가 뱃속에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태아는 정상 분만 체위인 두위의 골격이었다. 결국 이 여성은 분만 중에 난산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진의 흥분은 하늘을 찔렀다.
“세상에……. 이것이 모자(母子) 미라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수백 년 전의 모자 미라란 말인가!”
임신 중 사망한 모자 미라가 남아 있기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임신 중 사망하는 경우 부패가스가 장기에 차서 태아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아가 그대로 뱃속에 남아 있다니……. 흥분과 놀라움 속에, 진행 중이던 CT촬영 결과를 서둘러 확인했다. 그랬더니 엑스레이 촬영에서 보았던 태아의 모습이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 5부 29장 ‘출산 직전에 사망한 산모, 파주 파평 윤씨 미라’ 중에서

 


저자소개

 

조유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뒤에, 오로지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조사에 평생을 바쳐 온 “한국고고학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1971년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 경주 지역의 황룡사, 월성, 감은사, 익산의 미륵사지 발굴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발굴조사를 비롯해, 러시아와 공동으로 수추섬의 신석기시대 유물을 발굴하는 등 40년 동안 고고학 발굴을 이끌어 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장, 유적조사실장,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했고, 1998년부터는 국립문화재연구소장으로 있다가 2002년에 정년퇴임했다. 2006년부터 2009년 3월까지는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장과 남한산성운영위원장, 경기도 박물관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백제고분 발굴이야기』,『한국사 미스터리』(공저),『발굴이야기』등이 있다.


▪이기환

 

서울 인왕산 자락인 청운동에서 나서 중동고와 성균관대를 나왔다. 집안형편 때문에 대학에서는 취업이 잘 된다는 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코흘리개 시절부터 키웠던 기자의 꿈을 끝내 버리지 못해, 1986년에 결국 《경향신문》에 입사했다. 여러 부서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문화부에서 ‘팔자에 없었던’ 문화유산을 담당했다. 이때 조유전 선생을 만나 ‘한국사 미스터리’라는 기획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내친 김에 대학원(한양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 ‘비무장지대 일원 유산 보전방안 연구’를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지뢰밭을 뚫고 매력적인 비무장지대 일원에 대한 답사에 시간을 보냈고, 철책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탐사하는 기회도 잡았다.
필자는 천생 ‘기자’다. 기자는 ‘중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 천학(淺學)이지만 고고학의 대중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다. 저작물로는 『분단의 섬 민통선』,『한국사 미스터리』(공저),『코리안루트를 찾아서』(공저),『성산 장기려』,『아버지의 얼굴』,『우리 큰형 이야기』,『끝없는 도전』등이 있다.

       

목차
  


차례

 

들어가면서1|발굴로 보는 우리 역사 답사기 ∙ 6

들어가면서2|미래를 위해 과거의 흔적을 찾아가는 행복한 여정 ∙ 9


제1부 충청|하늘이 내려준 고대사의 흔적

 

 1장_마한의 비밀을 간직한 공주 장선리 유적 ∙ 14
 2장_무령왕릉 이후 최대 발굴, 공주 수촌리 고분 ∙ 24
 3장_철강 강국 백제의 위용을 보여 준 청주 신봉동 유적 ∙ 42
 4장_나·당 국제회담이 열린 철옹성, 보은 삼년산성 ∙ 60
 5장_발 끝에 걸려 머리를 내민 단양 적성비 ∙ 72
 6장_어느 향토사학회가 발견한, 중원 고구려비 ∙ 82
 7장_위덕왕의 뼈저린 반성이 담긴 부여 왕흥사 ∙ 96


제2부 호남·제주|고고학, 동북아의 중심에서 역사를 만나다

 

 8장_서동과 선화의 파란만장한 사랑이야기가 깃든 익산 미륵사지 ∙ 118
 9장_고대사의 블랙박스가 열린 나주 복암리 유적 ∙ 138
10장_고철에서 국보로 운명이 뒤바뀐 화순 대곡리 청동예기 ∙ 164
11장_2,000년 전의 무역항, 해남 군곡리 유적 ∙ 174
12장_또 다른 역사, 탐라의 흔적을 간직한 제주 고산리 유적 ∙ 184


제3부 영남|역사가 바뀐 곳, 역사가 이루어진 곳

 

13장 _ 한국 고고학의 출발지가 된 영도 동삼동 패총 ∙ 202
14장 _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해 버린 동래 복천동 고분군 ∙ 218
15장 _ 전쟁고고학의 성과를 담아낸 동래읍성 ∙ 234
16장 _ 주인을 따라 순장된 창녕 송현동 소녀 ∙ 250
17장 _ 태풍을 타고 떠오른 8,000년 전의 배, 창녕 비봉리 유적 ∙ 274
18장 _ 구국의 일념이 절절이 배인 경주 사천왕사터 ∙ 290
19장 _ 농부가 찾아낸 신라 최고 고비, 포항 중성리비 ∙ 306
20장 _ 일연선사의 체취가 묻은 군위 인각사 ∙ 324
21장 _ 세계를 눈물로 적신 사랑이야기, 안동 원이 엄마의 편지 ∙ 348
22장 _ 고구려와 신라가 지하에서 만나는 영풍 읍내리 벽화고분 ∙ 362


제4부 강원|문명을 낳은 땅, 국난을 이기다

 

23장 _ 국난의 아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원주 법천사 ∙ 380
24장 _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진 정선 아우라지 청동기 마을 ∙ 392
25장 _ 신석기인들의 도시, 강릉 초당동 유적 ∙ 404
26장 _ 3,000년 전의 청동기 마을, 화천 용암리·위라리 유적 ∙ 416


제5부 서울·경기|학문과 거래, 일상이 담긴 곳

 

27장 _ 한성백제인들의 논어책이 나온 인천 계양산성 ∙ 428
28장 _ ‘조선의 부활’을 알린 서울 청진동 유적 ∙ 436
29장 _ 출산 직전에 사망한 산모, 파주 파평 윤씨 미라 ∙ 446
30장 _ 2,000년 전 백제의 대장간 마을, 연천 삼곶리 유적 ∙ 474

 

참고문헌 ∙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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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예제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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