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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의 극치인가 사랑의 장벽인가 (액션 바이블 러브스토리 2)
성서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성서 안에 하나님이 있다. 성서 안에 사랑이 꿈틀댄다. ...
ISBN 978-89-315-7285-8
저자 박요한
발행일 2008-06-25
분량 344쪽
편집 1도
판형 128mm × 188mm
분야 종교/기독교/기독교일반
개정판정보 2008년 6월 25일 (초판 1쇄 발행)
정가 9,800원↓
판매가 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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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책 소개
성서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성서 안에 하나님이 있다. 성서 안에 사랑이 꿈틀댄다. 인생의 고뇌와 환희, 죄악과 구원, 죽음과 부활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성서안의 ‘사랑’이라는 상자를 꺼내 풀어낸 액션 바이블 러브스토리다. 성서에 등장했던 사랑의 사건들을 오늘의 언어와 시각으로 재해석했다.
사랑의 정체는 무엇인지,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 사랑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저자는 문학의 힘으로 성서속의 사랑 이야기를 표현했다. 
저자는 자신의 목회와 문학은 ‘신과 사랑’ 으로 귀결된다고 했다. 신의 존재, 사랑의 악랄함, 사랑의 고약함 등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규명하기 위해 다이나믹한 액션 바이블 러브스토리가 창조되었다.    

▸이 책의 구성과 특징
신의 존재, 신의 명칭을 풀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는 저자는 ‘과연 신은 무엇인가?’ 의 명제에서 시작하여 또 하나의 숙명적인 과제인 ‘사랑’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액션 바이블 러브스토리 <나의 신, 야훼인가 여자인가> 는 그러한 명제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에는 창세기부터의 성서 속에 나타났던 무수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서 속의 이야기를 오늘의 언어와 형식으로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랑이야기에서부터 인류 문명의 시작과 사랑의 역사,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풀어냈다. 
특히, 성서속의 사랑 이야기를 재해석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바이블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며, 등장인물들의 파라만장한 삶을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기하게도 오늘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는 숭고한 사랑, 거짓된 사랑, 인간의 욕망을 아우르는 여러 갈래의 사랑 이야기를 만나보자. <액션 바이블 러브 스토리>는 앞으로 7권의 시리즈로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 소개
저자 박요한
박요한은 1943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서라벌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과 국문학을 공부했다. 서울신학대학 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YUIN University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불’이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현대문학>, <한국문학>, <문학정신>, <월간문학> 등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2002년에 장편소설 ‘오고 있는 나라’로 계간 <문학마을> 주최 제1회 문촌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단편소설 ‘다시 뜨는 눈’으로 미주 크리스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주개혁신학대학 총장, 뉴욕 베들레헴 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저서 장편 소설 <人子의 땅>(범우사), <오고 있는 나라>(문학마을)
 창작집 <잉카로 가는 길>(문학마을)

 


▸추천의 글
‘패륜의 극치인가 사랑의 장벽인가’는 이 시대 사랑의 대헌장입니다.

사랑은 역사 속에 있는 영원이며 영원 속에 담긴 역사입니다. 사랑은 죽음 속에 있는 생명이며 생명 속에 있는 죽음입니다. 사랑은 땅 속에 묻힌 하늘이며 하늘 속에 박혀있는 땅입니다. 사랑은 골짜기 속에 담긴 높은 산이며 높은 산에 안겨있는 골짜기입니다.
사랑은 씨앗이요 새싹입니다. 뿌리요 줄기요 가지요 잎이요 꽃이요 열매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과정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의 완성이며 모든 것의 전체입니다.
사랑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사랑을 창조하신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그리고 십자 틀에 걸려 있는 하나님 바로 그 분 자신입니다.
-이정근 박사 (유니온 교회 담임목사, 미주성결대학교 명예총장)

목차

▸목차

서모 빌하와 장남 르우벤의 통간사건, 근친 불륜의 사랑 이야기 
패륜의 극치인가, 사랑의 장벽인가

야곱의 딸 디나의 강간과 세겜 성의 학살, 피바다 사랑 이야기
야곱의 아들들, 정의의 칼부림인가 못난 복수혈전인가

보디발 장군 부인의 유혹을 거절한 요셉의 공의로운 사랑 이야기
요셉, 청순한 남자의 대명사인가 매정한 출세지상주의자인가

이스라엘을 구출한 기생 라합과 첩보원 살몬의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
전설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자식을 낳은 큰며느리 다말의 도발적  사랑 이야기
민족 번성을 위한 고육지책인가 불륜적 근친상간인가

▸본문 중에서

패륜의 극치인가, 사랑의 장벽인가
 당시는 친족 간의 결혼이 성행했지만 근친상간은 금기였고 죄악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그것은 인간이 마성이요, 변태적 욕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빌사와 르우벤의 근친상간은 그들에게 과연 사랑의 장벽이었는가, 아니면 패륜의 극치였는가. 서모 빌하와 장남 르우벤의 통간사건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하는가. 서모와 아들이라는 장벽이 그들의 사랑을 막았는가, 아니면 단순한 근친상간의 치정사건이었는가. 우리는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p.27 中)
불륜의 시작은 아주 미미하여 처음부터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주 세미하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시작된다. 주변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불길은 점점 거세게 번져 산불처럼 활활 타오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은 지상 최대의 진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사랑을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정당화한다. 모든 사람이 불륜이라해도 자신들만은 순수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기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히려 원망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p,30 中)
 
야곱의 아들들, 정의의 칼부림인가 못난 복수혈전인가

이들의 행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귀여운 여동생 디나를 강간한 세겜 성에 대한 야곱의 아들들의 정의로운 응징인가. 선민에 대한 이방 족속의 무례를 야훼의 이름으로 처벌한 것인가, 아니면 일시의 흥분으로 저질러진 못난 야곱 아들들의 복수혈전인가. 성경학자들 간에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복수의 광란 극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참혹한 학살이었다. 더구나 할례라는 성스러운 행사를 사람 잡는 데 이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p.75 中)
이 사건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다고 보는가. 이 사건이 하나님 선민의 혈통을 지키려는 어쩔 수 없는 정당한 공격이었는가. 어린 여동생 디나가 강간당한 것에 대한 정당 방위였는가. 그것도 아니면 이방 족속에 대한 선민의 순수성을 찾으려는 명분 있는 전쟁이었는가. 세겜 성의 처절한 학살과 노략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 사건 이후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동의하시지 않는다는 뜻이다. (p.76 中)

요셉, 청순한 남자의 대명사인가 매정한 출세지상주의자인가
요셉의 고발은 무차별했다. 자기 집 식구는 물론이고 근동 일대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버지 야곱에게 고발했다. 이런 요셉의 고발정신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요셉의 고자질은 그런 고발 문화와는 조금 거리가 멀다. 소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하여 사람 잡는 데 썼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다분히 정략에 의한, 사리사욕에 의한 고자질이 아니었나 싶다. (p.86~87 中)
요셉은 어떤 면에서 보면, 누구 못지않게 출세를 갈구하는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구 못지않은 성공에 대한 야망이 불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셉은 그 출세를 위해 얕은꾀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것을 참고 이겨냈다. 이를 악물고 이겨냈다. 더 큰 앞날을 보자, 나의 위대한 꿈을 생각하자, 미래에 성공한 나의 모습을 보자, 일점일획도 이런 일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요셉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출세지상주의자의 자기 관리다. 그리고 그것을 성공시킨 사람이 바로 요셉이다. (p.160~161 中)

전설이 아닌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안타까웠다. 위험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그들. 진정한 사랑은 전쟁터에 있다고 하질 않았는가. 전쟁 중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하질 않았는가. 참화 속에서 피고 지는 사랑, 그런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전쟁 중에 만나는 남녀, 그들이 진정한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던가. (p.263 中)
라합은 무서운 전쟁에서 구출되었다. 그녀뿐 아니라 온 가족이 구원받게 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정탐꾼 두 명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위한 여리고 성 함락에 특별한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위해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기 민족을 버린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우상의 땅이 언젠가는 멸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참 신인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멸절시키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확신했다. 이 기회에 야훼 하나님을 섬기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진정한 조국이며 선민의 나라인 이스라엘 민족의 백성이 되기를 소원했다. (p.281 中)

민족 번성을 위한 고육지책인가 불륜적 근친상간인가
지금의 윤리 상황으로는 계대결혼이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대결혼이란 합법적인 근친상간이며 합법적인 근친의 결혼이기 때문이다…… 근친상간은 금기다. 그것은 장벽이다. 그것이 인류가 지켜온 계율이며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유일한 자존심이다.……(p.297 中)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인류 구속학적, 하나님의 은총사적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 인간의 집요한 감정을 오히려 선용하셔서 인류의 창대함을 이루신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 다말과 시동생의 동침사건도 바로 그런 것이다. (p.298 中)

 

 

저자
부록/예제소스
정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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